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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교회―⑥ 안동교회] 신앙·선비정신의 만남 100년 이어온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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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085회 작성일 08-12-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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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교회―⑥ 안동교회] 신앙·선비정신의 만남 100년 이어온 민족교회

[2008.12.08 21:56]      


양반교회로 소문난 서울 안국동 안동교회(安東敎會)는 "에헴!" 하고 목에 힘을 잔뜩 주는 교회가 아니었다. 경북 안동에 있는 안동교회와는 이름은 같지만 2개월 정도 먼저 창립됐다. 교회는 청와대가 있는 서울 북촌의 역사 깊은 교회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종로경찰서 맞은편 골목으로 150m쯤 가면 나온다. 북촌은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주거지로 형성돼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청빈과 강직' 선비정신 살아있는 양반교회=안동교회는 20세기 벽두 민족의 미래를 신앙과 교육에서 찾은 선각자들이 세웠다. 1908년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박승봉 유성준 등을 중심으로 기호학교(현 중앙중고등학교)가 설립됐으며 그 이듬해인 1909년 3월7일 김창제의 집에서 처음으로 교회 종이 울렸다.

서울의 '양반교회'로 알려진 안동교회는 교회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지난 10월1일부터 이달 31일까지 100일 릴레이 기도 중이다. 새벽기도와 개인, 구역과 금요심야기도회로 이어지고 있다.

안동교회는 28년간 시무한 유경재 원로 목사의 뒤를 이어 박병욱 목사가 담임 목사로 시무했다. 지난 7일에는 제12대 담임으로 황영태(47) 목사 위임식이 열렸다. 이날 황 목사 위임식과 더불어 2006년 국가석학으로 지정돼 차세대 노벨상 후보로 촉망받고 있는 이수형(46) 연세대 석좌교수 등 40여명의 장로와 집사, 권사 임직식도 있었다.

황 목사는 "안동교회는 민족교회, 개혁교회, 세계로 열린 교회를 지향하며 에큐메니컬적인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면서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신앙의 전통과 미래적 교회의 비전 가운데 오늘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안동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인재를 육성, 배출해 사회와 교회에 기여했다. 일제 치하에서 한글을 지키다가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은 안동교회의 장로였다. 제2대 윤보선 대통령은 선대로부터 안동교회 바로 앞에 있는 자택에서 평생을 지내며 평신도로 믿음을 쌓았다.

"기독교가 아니면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세워야만 백성들을 빨리 깨우칠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서울에서 회령까지 철로가 난다 하니 정거장이 서는 읍촌마다 교회와 학교를 세웁시다."

1909년 3월7일 안동교회를 설립한 박승봉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돼 통치권이 통감에게 넘어갔으며 2년 뒤에는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했다. 그해 8월엔 군대가 해산됐다.

당시 서울에는 정동제일교회 새문안교회 승동교회 연동교회 상동교회가 있었다. 이들은 외국 선교사들이 세웠다. 황 목사는 "단순하게 백성들과 함께 예배(승동교회)를 드릴 수 없어서 양반교회(안동교회)를 세웠다고 말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라면서 "북촌을 중심으로 한 크리스천 민족 운동가들이 이곳에 교회를 세워 독립운동과 복음을 함께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안동교회의 정체성은 선비정신에 있다. 선비란 청빈(淸貧)을 높은 가치로 여기며, 불의와 타협을 거부하는 정신으로 옳다고 생각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 자세다. 54년에 고등부 회장을 지낸 최내화(73) 장로는 "우리 교회를 부르는 별명이 양반교회였다는 것은 당시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지도자급에 있었던 양반들이 주동이 돼 세운 교회였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이 이름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특별한 교회임을 나타내는 별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반이라고 해서 다 선비는 아니지만 양반이 예수를 믿으면서 그들 속에 더 강하게 선비정신이 자리잡게 됐을 것"이라며 "안동교회는 이런 선비정신이 투철한 양반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룩하면서 처음부터 신앙과 일치된 선비정신을 존중했고 품위를 지키는 교회로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초대 담임을 지낸 한석진 목사는 한국의 최초의 목사 7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평양장로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 당시 길선주 목사 등은 모두 갓을 쓰고 다녔지만 한 목사는 머리를 짧게 잘라 서양식 헤어스타일을 할 정도였다. 청빈한 선비로 대표적인 인물은 김창제다. 그는 일제의 개명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평생 평신도로 살았다. 한글학자 이윤재는 '왜놈에게 단 5전의 전차삯도 보태기 싫다'면서 걸어다녔으며 총독부의 건물을 보지 않으려고 서울역쪽으로 돌아다녔다. 교회 마당에 유치원 졸업을 기념해 학부형이 기부한 벚나무를 심었다고 당시 담임인 김우현 목사와 다퉈 교회를 옮긴 일화도 유명하다. 3대 목사인 김강원은 땔감이 없어 겨울에 냉골에서 지냈으며 교회의 장작에 손을 대지 않았고, 끼니를 굶어도 성미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00년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교회=70년대 이후 군사정권 시절 윤치소 장로의 장남인 윤보선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공덕귀 권사는 민주와 운동에 앞장섰다. 안동교회에서 3대째 신앙의 맥을 잇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의 장남 윤상구(58) 장로는 "선배 성도들의 청빈 정신이 오늘에 와서는 많이 약화됐지만 안동교회에는 아직도 이런 가치를 존중하는 의식이 깊이 깔려 있다"면서 "100년의 교회로서 자랑할 것은 별로 없지만 개혁적이고 청빈한 삶을 높은 가치로 인식하는 선비정신 하나 만은 한국교회 앞에 내놓고 싶다"고 말했다. 96년에는 교단 최초의 여성 장로와 목회자를 세울 만큼 시대를 앞서갔다.

내년 10월 감사절에는 '구레네 시몬 7부작'(가제·대본작가 헤르베르트 폰 포트)을 공연한다. 골고다 길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을 통해 골고다 길에서의 회상과 수난, 부활, 성령강림절 사건들이 직간접으로 조명된다. 최 장로는 "오늘날 대다수 한국교회의 음악은 CCM의 물결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안동교회는 대형교회들이 할 수 없는 기독교 전통 바로크음악의 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교회는 독거노인 반찬 배달과 재소자 선교, 어린이집 운영, 노인 프로그램인 늘푸른교실 등으로 북촌의 지역사회에 소리 없는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농촌교회에 정보화 교육을 해주고 있으며 병원 선교와 몽골 등지에서 해외 선교를 하고 있다. 후손들에게 전해줄 타입캡슐도 마련한다. 이 캡슐은 내년 3월 창립 주일에 봉인해 2059년 봄에 개봉된다. 20여일 후면 100주년을 맞는 안동교회 성도들은 50년 후 타임캡슐을 열어볼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겨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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